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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마쿠마리스 세계영성대학교의 역사

브라마쿠마리스는 현재의 파키스탄에 있는 하이데라바드라는 도시에서 1937년에 다다 레크라즈 크리팔라니라는 은퇴한 인도 사업가에 의해 창설되었다.

그의 영적인 이름은 프라자피타 브라마이며, 브라마 바바라는 사랑이 담긴 이름으로 불린다. 그는 1936년에 일련의 비전을 경험한 후에 영감을 받아 미덕 함양과 명상 수련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설립하였다. 소수의 남녀와 아동들로 구성된 이 학교의 본래 이름은 ‘옴 만달리’였는데,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분리되기 전의 사회적인 혼란과 격동 속에서 그들은 함께 모였고, 하이데라바드에서 1년 후에 카라치로 옮겼다. 점차적으로 영혼과 신, 그리고 시간의 속성에 대한 간단하고 명료한 지식이 주어졌으며, 거의 4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14년 동안 집중적인 영적인 공부와 명상, 그리고 자기 변화에 시간을 헌신하는 자생적인 공동체 생활을 했다.

1950년 BK 공동체는 인도 마운트 아부로 옮겨와 임대한 건물에서 몇 년을 지낸 후에 프라자피타 브라마쿠마리스 이쉬와리야 비쉬와 비디얄라야(브라마쿠마리스 세계영성대학교)라고 불리는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 브라마쿠마리스의 영성본부는 마두반(‘꿀의 숲’)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라자스탄의 아라발리 산맥 위에 소재한 마운트 아부는 1950년 카라치에서 옮겨온 초기의 BK 그룹에게 좋은 사색과 성찰의 분위기를 제공해주었다.

 

브라마쿠마리스 세계영성대학교에서는 다양한 연령과 출신배경을 가진 개인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모든 종교를 존중하는 영적인 지식을 공부하고, 영혼과 신, 시간과 카르마의 속성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영적인 생활방식을 실천한다.

라자요가 명상은 마음을 이완시켜주고,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 사이의 건강한 균형을 되찾아주는 명상수련법이다. 학생들은 수많은 사회봉사 활동과 파트너십을 통해 좀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영적인 이해와 청렴한 지도력, 그리고 고결한 행위를 증진한다.

1973년에 런던에 국제본부가 세워지면서 해외에 브라마쿠마리스의 라자요가 명상이 소개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세계 110여개국에 8500개의 명상센터가 있다.

창설자 브라마 바바

브라마 바바는1880년대에 마을의 학교 교장의 소박한 가정에 아들로 태어난 레크라즈 크리팔라니였다. 레크라즈는 힌두교의 규율 안에서 양육되었다. 여러 직업을 거친 후에 그는 보석 사업을 시작했고, 후에 다이아몬드 상인으로서 상당한 재력을 모았다. 그는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고, 특히 자선가로서 잘 알려졌던 지역사회의 지도자였다. 1936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퇴할 준비를 할 나이에, 그는 실제로 그의 일생에서 가장 활동적이고도 경이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일련의 깊은 영적인 체험과 비전을 본 후에 그는 사업을 정리하고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와 부를 후에 브라마쿠마리스 세계영성대학교가 될 단체의 초석을 놓는데 헌신하고 싶은 매우 강렬한 끌림을 느꼈다.

1937-1938년 사이에 그는 여덟 명의 젊은 여성들로 구성된 관리위원회를 만들고 그들이 운영하는 재단에 그의 전 재산을 내 놓았다.

인도 전역에 많은 브라마쿠마리스 센터들이 개설될 수 있도록 지도한 후에 그는 1969년에 몸을 떠났다. 마두반 캠퍼스에 있는 평화의 탑은 삶의 심오한 진리의 도전에 맞섬으로써 탁월함을 달성한 이 평범한 인간의 불굴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물이다.

브라마 바바가 1936년 일련의 비전을 본 이래로 여러 해가 지났다. 그가 시작한 혁명적인 생활방식은 수백만에게 영감을 주어 그들 스스로 힘을 얻고 미래를 위한 희망을 창조하게 해주었다. 브라마 바바가 가르친 삶의 기술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치가 확인되었다. 그가 앞에 내세웠던 젊은 여성들은 이제 80대와 90대의 나이에 사랑과 평화와 지혜의 횃불이 되었다.

​현재의 지도자들

다디 장키

다디 장키는 1916년에 태어난 다디 장키는 브라마쿠마리스의 활동적인 수석 책임자다.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진 다디 장키는 지칠 줄 모르며 남들에게 봉사함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 다디는 1937년 이래 헌신해왔고, 1974년부터 40년간 런던에 거주했다. 그녀는 모든 문화와 직업 배경을 가진 개인들에게 더 높은 목적의식을 갖고, 더 나은 세계를 창조하는데 기여하는 삶을 살도록 영감을 주어왔다.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는 다디 장키의 말과 행동은 보고 듣는 이에게 절대적인 기쁨을 준다. 

다디 히르다야 모히니

브라마쿠마리스의 부책임자인 그녀의 이름은 ‘마음을 끄는 자’를 뜻한다. 그것은 다디에게 꼭 맞는 이름이다. 굴자(‘장미꽃밭’)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다디는 브라마 바바가 1937년에 세운 기숙학교의 초기 멤버 중의 하나였다. 오랜 기간 동안의 집중적인 영적인 원칙과 수련을 통해 그녀는 살아 있는 덕성의 모범이 되었다. 소박하고, 고요하며, 깊이가 있는 그녀는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다디 라탄 모히니

다디 라탄 모히니는 브라마쿠마리스의 공동책임자다. 그녀는 브라마쿠마리스 초창기였던 어린 시절에 자기 삶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라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언제나 가벼워 보이고 긴장 없는 삶을 산다.  헌신적으로 올곧은 다디는 인도 전역의 교사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훈련에 관심을 집중해왔으며, 젊은이들이 자신의 인성개발과 성장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필요한 영적인 지원을 해왔다. 그녀는 8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동감이 넘치며 마음이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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